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📘 조선 전기 대외관계 & 양 난
1. 조선 전기 대외관계
1) 명(明)과의 관계 — 사대 외교
- 명을 '상국'으로 인정
- 책봉 관계 유지
- 조공을 통해 외교 안정
- 사대 외교를 통해 국제적 질서 유지 → 문화·제도 수용
- 명나라와의 무력 충돌 거의 없음(여진 문제로 긴장 존재)
2) 여진(女眞)과의 관계 — 교린 정책
- 여진을 회유 + 견제하는 교린 정책 실시
- 경원·경성·종성 등 북방에 4군 6진 개척(세종)
- 목적: 국경 방어, 여진 세력 억제, 농지 확보
- 사군(4군): 이중하·최윤덕
- 육진(6진): 김종서가 주도
- 무로마치·일본과의 교류보다 긴장도가 높았음
3) 일본과의 관계 — 교린 + 왜구 단속
- 초기 왜구의 침입이 빈번
- 쓰시마 정벌(이종무, 세종) → 왜구 근절 목적
- 일본과의 공식 통교: 계해약조(세종)
- 무역선 허가 50척, 세견선 제한
- 이후 삼포 개항(부산포·염포·제포)
- 왜관 설치 → 무역·외교 관리
- 일본과는 경계 + 제한적 교류 유지
2. 조선의 ‘양 난’
1) 임진왜란(1592)
(1) 배경
-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침략 야욕
- 조선의 방비 소홀, 조정의 붕당 갈등
(2) 전개
- 부산·한양·평양까지 급속 점령
- 조선의 패전으로 백성 피해 극심
- 의병 봉기: 곽재우·고경명·조헌·정문부 등 활약
- 수군의 활약
- 이순신의 옥포·사천·한산도 대승
- 해전에서 우세 확보 → 일본 보급로 차단


- 명나라의 원군 참여
- 정유재란(1597): 일본 재침 → 이순신의 명량해전·노량해전
(3) 결과
- 국토 황폐화, 인구 감소, 문화재 소실
- 신분제의 동요(노비 해방 증가, 군역·조세 문란)
- 광해군의 중립 외교 기초
- 비변사 기능 강화 → 중앙 정치기구의 변질
2) 병자호란(1636)
(1) 배경
- 후금(청)의 급성장
- 광해군의 실리적 중립 외교 → 인조반정 후 친명배청 정책으로 전환
- 청과 조선의 갈등 심화
(2) 전개
- 정묘호란(1627) 이후 형식적 외교 맺음
- 1636년 청 태종의 침입 → 병자호란 발발
-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 실패 → 남한산성 항전
- 결국 청에 항복(삼전도의 굴욕)
(3) 결과
- 조선은 청에 군신 관계를 맺고 외교적 굴욕
- 북벌 운동 대두 → 효종 중심 북벌 추진(실행은 미약)
- 조선의 국제 질서 인식 변화
- 대외적 고립 심화 → 실학 등장 배경 중 하나
📌 핵심 요약 포인트
- 조선 전기 외교는 명과의 사대, 여진·일본과의 교린으로 정리.
- 임진왜란: 이순신 해전 승리, 의병, 명의 원군이 전세 반전 핵심.
- 병자호란: 인조의 친명 정책 실패와 삼전도의 굴욕, 조선의 대외관 인식 변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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